옛 모습 그대로 -보물 제183호 江陵 海雲亭[晩秋旅行]
옛 모습 그대로 -
보물 제183호 江陵 海雲亭[晩秋旅行]
경포대를 돌아본 뒤 관광버스는 경포호수를 한 바퀴 빙 돌아준다. 경포대, 선교장, 오죽헌 등등 한옥이 즐비한데 유독 눈에 뜨이는 소박한 한 채의 집은 내리고 보니 ‘海雲亭’이었다. ‘바다구름이 머무는 곳’ - 그럴만한 이름이었다. 문화재 가운데 보존이 제일 어려운 것이 목조건물 아닐까? 목조건물은 지붕이 눌러 주어야 태풍을 견디고 틀을 유지할 수 있고 또 기둥이 썩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기와의 틈새가 벌어지거나 기울어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기와가 와르르 쏟아지는 것을 瓦崩이라고 할 만한데 국어사전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瓦解정도로 쓰는 것 같다.
목재 기둥의 아름다움은 水分이 內密하게 증발하며 속으로 木質을 凝縮하며 化石되어가는 死後의 생명력 때문이다. 대목장들은 뿌리가 잘려도 나무가 선대로 바로 세워 집을 지으면 千年이 간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거꾸로 세우면 반드시 썩는다고 한다. 죽어서도 하늘을 우러르는 의지의 생명이 있다고들 한다.
우리는 나무기둥을 쓰다듬으며 손때를 묻힌다. 반들반들 해지는 기둥은 집주인의 指紋을 손때로 그 기둥에 남기며 함께 살아간 역사다.
지금은 아파트가 대세여서 논가에 빌딩이 들어서고 아파트 왕국이라면서 외국인의 관광거리라는 우스개가 들리지만 이것도 저것도 스러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집이 숨을 쉰다는 안동, 나주 등등 한옥마을 체험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진 韓屋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이 집과 함께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세월을 이겨낸 목재의 가옥을 원형대로 보기에는 너무 힘겨운 세상이 되었다. 문화재보수라는 미명으로 시멘트를 덧대거나 추녀에 단청을 입혀 새집을 만들어 은은한 세월의 빛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 집은 지금 보수중이지만 그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아무튼 2010년 가을은 500년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해설을 참조하면 이렇다.
해운정은 조선 중종 25년(1530)에 어촌 심언광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지었다고 하니 거의 500년이나 되는 옛집이다.
조선 상류주택의 별당 건물로 경포호가 멀리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있다는데 문 앞에는 연못이 넓었었는데 길이 생기고 차들이 왕래하며 옛 정취를 많이 잃었다. 양 날개에 행랑방을 둔 솟을 대문은 단정하다. 대궐이라면 행랑방도 곁문이 되어 車馬와 행인의 출입을 따로 하는 굉장한 구조가 될 것이다.
마당을 앞에 두고 3단으로 쌓은 축대 위에 남향으로 지었는데, 정면은 3칸이고 옆면은 2칸으로 이른바 초간 삼간 두 채를 붙여놓은 규모다. 실내는 오른쪽 2칸은 대청이며 왼쪽 1칸은 온돌방인데 당연히 대청은 두 칸짜리 정방형이다. 손님들이 둘러 앉아 詩會를 하기 알맞은 구조다. 요즘 같으면 세미나 겸용 茶室이라고 할지?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고, 대청 앞면에는 문을 달아 모두 열 수 있게 한 것은 여름에 시원한 경포호수의 바람을 맞이하려는 배려다. 건물 주위에는 툇마루를 돌려놓았다.
漁村 沈彦光 선생은 조선 중종 2년(1507) 진사가 된 뒤,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친 분으로 문장에도 뛰어났다. 당연히 권진응, 율곡 이이 등 유명한 사람들의 글이 걸려 있고 건물 정면에 ‘해운정(海雲亭)’이라는 현판은 宋時烈이 썼다. 또한 중종 32년(1537) 明나라 사신(使臣)인 정사(正使) 공용경(龔用卿)과 부사(副使) 오희맹(吳希孟)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어촌은 접반사(接伴使)로 나아갔는데 그때 공용경이 쓴 '경호어촌(鏡湖漁村)'이란 액자(額子)와 시(詩) 및 오희맹이 쓴 '해운소정(海雲小亭)'이란 액자가 걸려 있다.
1963.1.21에 보물 183호로 지정되었다.
소 재 지 강원 강릉시 운정동 256
소유와 관리는 沈氏 門中에서 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 원조 초당순두부가 있다. 정자에서 두부를 먹으며 막걸리를 기울이고 이 보물을 바라본다는 것은 여행에 지친 나그네에게 더할 것 없는 선물이다. <*>
행랑방을 좌우로 거느린 대문은 단정하면서도 위엄을 갖추고 있다.
왼쪽은 온돌방 오른쪽 두 칸은 대청
상단으로 쌓은 축대는 자연석을 규모있게 배열했고
층층에 모란을 심었다면 봄에는 꽃 속에 묻힌 집이었을 것이다.
축대와 지붕과 본채가 모두 균형을 갖추고 있다.
정문과 대청에 걸려있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는 많이 훼손되어 모각한 것이다.
안채에서 바라본 대문 - 문밖에 연못이 있고 그 건너 경포호수가 있는데
여름에 시원한 바람이 저 문을 건너오면 연꽃이 하늘거리며 춤을 추었을 것이다.
明나라 사신 공용경의 경호어촌
明나라 부사 吳希孟의 해운소정
나무의 순수한 살결이 은은하다
틈없이 단정한 들창
손때가 그리운 마루바닥
빈틈없이 반듯한 천반자는 목공의 솜씨를...
튼튼한 서까래는 강릉 해송의 재빌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대청애서 바라보이는 경포호수는 길에 가로막혀버렸다.
볼품없이 줄어든 연못은 손길이 좀 가야하고...
원조 초당순두부의 정자에서 바라 뵈는 해운정 - 소나무 병풍이 일품이다.
중요민속자료 심상진 가옥이 이웃하고 있다.
두부찌개 한 모와 부드러운 손두부- 막걸리 한 잔이면 가을 여행으로 더 바랄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