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향 미추홀칼럼

개항장의 니혼마치

양효성 2010. 2. 10. 10:30

 

개항장의 니혼마찌[日本町] -도시의 재발견 2

 

梁曉星

 

 

개항장의 왜식 주택은 앞으로 덧대고 옆으로 양철로 막고 기와는 무너져 을씨년스럽고 길건너 상가도 활기가 없어 보인다.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우리말로 인사하는 일본 관광객을 흔히 만날 수 있는데 모두 서울로 가는 손님들이다. 대교가 개통되면서 국제공항이 한결 가까워졌다. 이 다리는 산동반도와 일본열도를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심리적 효과를 만드는 동시에 이 사람들이 인천에 머무르며 친근하게 교류할 수 있다는 느낌도 준다. 일본이 네 개의 섬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다. 이 네 개의 섬은 철로와 지하차도 등으로 연결되어 한 덩어리가 된지 오래다. 유로스타로 영국이 유럽과 연륙된 지도 오래인데 일본사람들도 부산을 통해 육로로 런던에 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國體(국체)와 國民(국민)은 별개

 

경계할 역사적 교훈은 많지만 우리가 내실을 다졌다면 韓流(한류)못지않게 외국문화도 받아들여 상생의 미래를 열어갈 때가 되었다. 그런 개항장으로 일본의 나가사키와 요코하마, 중국의 상해와 홍콩 등을 들 수 있고 한국은 인천과 부산을 꼽을 만하다. 개항장 일대에 중국 일본 독일 미국 등의 유적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차이나타운은 그 역사적 뿌리와 중국의 노력으로 개관 4주년을 맞은 한중문화관을 비롯하여 중국어체험마을, 패루, 삼국지거리, 중국정원 등을 통해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화교학교가 전통을 쌓아가는 것도 국제도시의 면모를 더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의 발길은 끊어지고 만국공원이던 자유공원부근에 그들의 역사적 흔적마저 사라진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글로벌사회가 존재하려면 이데올로기와 개인은 구별되어야한다. 우리가 월남에서 사업을 하고 며느리를 맞아들이는데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듯이 이제 주인으로서 개항장 거리에 살아있는 국제거리를 부활해야한다. 국제적인 도시는 외국인의 왕래뿐 아니라 그들이 머물러 사업을 하면서 서로 경제문화적 가치를 공유하는데서 비롯된다. 음식 음반 서적 기념품 등을 사고팔면서 점차 우리 문물도 일본에 소개될 것이다.

 

 

요식업사무소로 쓰이는 이 건물은 은행을 입점시켜 옛복장과 인테리어로 현대식 업무를 보면 어떨까? 

주민들이 봄볕 나들이를 하고 있는데 애써 키운 정원수는  이발(?)을 좀 해야겠다.  

 

  

         日本사람이 日本文化다.

 

  중구가 힘을 쏟은 신포동 외관 사업은 어설퍼 보인다. 정작 일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일본상인을 유치한다면 외관은 서서히 변해도 된다. 그것도 어려우면 우선 일본문화원이나 까페와 기념품가게를 우리손으로 열어 자리를 까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본은행이 모두 역사관과 한국최초박물관으로 바뀌었는데 남은 한 곳에 옛 은행을 재현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심양 고궁앞의 은행박물관엔 당시의 옷차림을 한 마네킹으로 은행을 재현하고 지하 금고를 보여주는데 매우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부산 광복동이나 해운대보다 왜관을 설치할 수 있는 장소로 한국에는 신포동만한 곳이 없다. 외국인들은 반나절이 남아도 공항에서 보낼지언정 인천에서 차 한잔하는 그 자투리시간도 쓰지 않는다. 인천에 있는 것은 서울에 다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없는 것을 살리는 것이 내외국인에게 모두 도움이 될 일이다. 더구나 인천의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고 또 일본으로 나들이하는 한국인들의 문화적 갈증도 풀어줄 수 있다.

 

일본 거리가 조성됨으로써 차이나타운의 색깔도 한층 이채로워질 뿐 아니라 한국의 독특한 문화도 더 두드러져 보이고 차차 독일 영국 미국 등의 거리도 조성될 수 있다. 유리창 안의 외자유치 보다는 활기찬 거리가 부가가치 창출에 더 기여할지 모른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京都에서 만엔짜리 지폐를 꺼냈을 때 일본인들은 쇼도꾸태자[聖德太子]의 초상을 가리키며 문화를 전해준 백제 사람이라며 한국인인 나를 우러러 보았었다. 그리고 길을 가르쳐주던 아주머니는 모퉁이의 탑까지 끌고 가며 이것도 저것도 ‘쇼도꾸태자’가 세운 것이라며 ‘일본 속의 한국문화’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 문화가 일본인들의 삶의 질을 높여준 경의를 한국인에게 표한 것이었다. 부산은 조선통신사 축제로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있는데 쇄국과 경술국치 100주년에 ‘의식의 높이뛰기’를 통해 克日(극일)을 모색해야하지 않을까? <*>

 

 

일본식 외장을 한 박물관거리의 한낮에 인적은 없다.  

 

 

 

 

그런대로 공공재가 투자된 아트프랫폼은 어떤 모습으로 시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줄지 시민의 호흡이 아쉽다. 

 

 

 

 

'인천경향 미추홀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교육(公敎育)과 한자(漢字)  (0) 2010.03.15
교육개혁의 선행과제  (0) 2010.03.02
선생님의 자리  (0) 2010.03.02
어머님 전 상서(上書).   (0) 2010.03.01
예술회관 상설전시장   (0) 2010.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