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모음

[1]앙코르에서 하룻밤

양효성 2010. 1. 2. 13:58

 

앙코르에서 하룻밤

-여행과 기록에 대해서

 

 

 

여행은 가장 동물적 행위다. 식물은 樹木自觀-참선하는 스님처럼 제 자리에서 만물을 깨닫는데 동물은 천지자연을 헤집고 다니며 깨닫고 산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그 움직임을 스스로 기록한다는 것일 뿐!

왜 인간은 움직이는가? 인생에 태어나고 죽는 일을 제외한다면 과연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인가? 오직 물음표를 안고 일생을 마치는 것은 아닌가? 그 해답을 찾고자 사람들은 집을 나서는지도 모른다. 모진 마음을 먹고 사생결단을 하는 사람들이 집을 나서면 出家라 하고 그런 분들을 우리는 수행자 또는 스님이라고 불러왔다.

 

기록이란 무엇인가? 보고 들은 것을 글로 적는 것인데 두서가 있으면 더욱 좋은데 우선 메모라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출발 : 2006년 丙戌年 여름은 철판위에서 튀는 팝콘처럼 뜨거웠다. 8월5일 11시20분 타이 항공은 인천공항의 맨 끝 50번 탑승구에서 이륙한다. 14시 40분에 방콕의 돈무앙에서도 맨 끝 75번 탑승구에 랜딩했는데 2시간의 시차를 더하면 5시간 반을 하늘에서 보낸 셈이다. 계류장에 베를린 필하모니 전용기가 눈길을 끈다. 현지시간 오후 4시에 출발-25분만에 시내 중심 라마4세거리를 지나쳤다. 2시간 빗길을 달려 지청싸모 휴게소에서 10분간 휴식 - 비는 계속 내린다. 낮에는 붕새의 내장에 갇혀 하늘을 날고 밤에는 하마의 뱃속에 담겨 흔들리는 기분이다. 몇 시에 아란에 도착했는지 여기서부터는 시간을 메모하지 않았다. 4시간을 버스로 달려 늦저녁의 머메이드(Mermaid) 호텔에 도착했다.

 

아란야프라텟 - 국경의 정거장 호텔 : 아침은 하늘로부터 온다. 어둠속에 무지개가 아닌 밝은 보라색과 분홍으로 띠를 두른 하늘은 점점 열푸른 색으로 스며들며 마침내 하늘이 드러나고 햇살이 비친다. 붉은 해가 회색에서 파란 하늘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신기하다.

 

國境 : 국경은 그냥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 갑자기 시장이 나타나고 과일의 색깔은 원색-고걍의 그림에서 보이는 선명한 색이다. 우리의 시골 시장 그대로 가건물이 늘어서 있는 그 곳은 캄보디아 난민 수용소였다는데... 오토바이-삼륜차버스(‘톡톡’이라고 부르나?)-설날 귀성객들 마냥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국경은 붐빈다. 보퉁이를 이고 걷는 사람-짐수레에 천막을 친 인력거를 타고 지나는 사람 -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 - 물건을 실으러 빈 수레는 줄을 잇고 가끔 산더미만한 짐을 실은 수레는 대여섯 명이 매미처럼 달려 붙어 미는데 바퀴는 깔려 보이지도 않는다. 이 짐을 보면 앙코르사람들이 어떻게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는지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그리고 꼬박 4시간을 일직선으로 뚫린 평야를 가르고 달렸다.

 

캄보디아 :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를 손에 비유하여 중국이 손바닥이라면 손가락에 해당하는 다섯 나라가 있다. 베트남-캄보디아-태국-말레이지아-미얀마가 그런 나라들로 우리는 이들을 동남아시아라고 부르며 이 손가락들은 손톱이 부르트도록 서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었다.

이들 동남아에 문명은 어떻게 흘러왔는가? BC 4세기 인도에 마우리아 왕조(BC 317∼180경)가 성립한 후, BC 2세기말에는 벵골 만, 말레이 반도, 인도차이나 반도의 연안을 경유해서 중국에 이르는 해상교통로가 형성되었고, 이 교통로를 따라 기항지에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거의 같은 무렵 중국에서는 한무제(漢武帝)가 BC 111년에 북부 베트남(남부에는 부남국(扶南國))을 정복했으니 이 나라들은 인도와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캄보디아에 역사상 최초의 국가 형태를 갖춘 푸난은 1-6세기경까지 메콩강 삼각주 유역을 중심으로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번창하였으나, 6세기말경 똔레샵 호수를 중심으로 성장한 젤라왕국의 성장으로 인해 쇠퇴했다. 802년 Jayavraman 2세가 스스로를 神王으로 칭하고 앙코르 왕조를 열어 1431년 샴(태국)의 침략으로 쇠퇴할 때까지 크메르 민족은 주변 국가의 지배자로 성장하였다. 1145년에 이르러 호전적인 수리아바르만 2세의 지휘 아래 참파(베트남)를 침략하여 점령하는 등 베트남 남부, 라오스, 미얀마 , 태국 일부를 포함하는 대제국을 형성, 앙코르와트 및 수많은 사원과 뛰어난 관개시설 등 세계적 문화유산을 남겼고 Jayavraman 7세(1181-1201 : 高麗 明宗11년-神宗4년) 때가 극성기였다. 야쇼바르만 1세(889-900)때 크메르는 인도차이나반도의 태반을 지배할 정도로 영토를 확장했는데 이 시대에 대승불교가 정식으로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1357년, 1394년, 1420년에 걸친 타이족의 침략으로 그들의 수도인 앙코르 톰을 포기하고 로베크로 새 도읍을 옮기면서 화려했던 시기도 막을 내렸다. 결국 1593년 샴의 공격으로 완전히 멸망하게 되는데 타이족의 영향은 결국 상좌부불교를 제외한 대승불교와 바라문의 쇠퇴 및 멸망을 가져왔다. 고려가 918년에 나라를 세우고 1392년에 조선이 섰으니 대략 千年전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앙코르는 신전이요 돌무지다. 이 거대한 돌무덤은 힌두와 부처를 품고 있고 그것을 받드는 인간의 신념이 깃들어 있다. 한 시대의 인간들이 힘을 모으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더 이상 앙코르왓은 불가사의가 아니다.

 

이 신전은 城砦(성채)와 네모뿔(피라미드)양식이 결합된 구조물이다. 동대문에 남향집이라는 한국의 풍수와 달리 이 신전은 서대문에 동서남북방향이 열려있는 당당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북경의 자금성에 가본 사람은 성을 에둘러 싸고 있는 해자의 규모에 놀란다. 이 해자는 그 보다 넓다. 서쪽에서 길이 190미터의 돌다리를 건너야 할 만큼 긴 다리의 중앙에는 나가(코부라)의 발코니가 있다. 물론 15미터의 폭은 6차선이 될 만큼 넓다. 코끼리를 탄 왕이 느릿느릿 230m나 되는 신전의 三門(삼문)을 향해 행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좌우에 남북으로 1.3km의 물을 바라보며 정문에 서면 한국의 절에는 사천왕상이 항상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여기서는 머리가 7개 달린 나가(蛇神)와 獅子(사자)의 석상이 힘자랑을 한다.

 

 

성벽인줄 알았는데 정문에 올라서면 폭이 4.5m인 회랑이 담장을 겸하고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줄지어 선 기둥을 따라 회랑은 끝없이 이어져 있는데 이 회랑은 우리 행랑채 그대로 기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군사들과 온갖 일꾼들이 성을 지키며 주둔했을지도 모른다. 지붕조차 돌로 둥그렇게 쌓아 돔을 이루었는데 석굴암의 穹窿(돔)과 불국사와 선암사의 虹橋(부지개다리)의 半圓(반원)을 여기서 다시 본다. 끼워 맞춘 돌로 된 천정은 원만한 공감감과 함께 매우 서늘하다.

 

정문에서 남쪽으로 즉 오른쪽으로 팔이 8개인 비슈누신의 입상이 있다는데 지나쳤다. 문을 지나면 난간을 따라 신도가 이어지고 드디어 거대한 신전이 密林의 樹平線에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지평선의 하늘을 화면으로 삼은 듯 평면화의 기법으로 중앙탑과 자금성의 각루처럼 네 방향에서 중앙탑을 옹위하는 탑들 가운데 2-3층의 남북 두 탑이 좌우에서 옹위하고 이어 회랑의 모서리 기단의 탑들이 지면에 연결된다. 탑들의 정상을 이으면 정확하게 완만한 이등변삼각형이 되고 그 모습은 이집트의 사막에서 보이는 피라미드의 신기루를 보는 것 같다. 중앙탑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오직 평원의 밀림과 하늘이 아스라이 맞닿아 있을 뿐 거칠 것이 없다.

 

신화와 역사 : 기단에 나란히 늘어선 기둥을 따라 회칠을 한 벽면에는 태초에 신이었던 인간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인간의 암울한 숙명이 천년의 침묵을 견디며 부스러져가고 있다. 줄기차게 태양을 향해 벋어가는 생명(비슈누)과 끊임없이 바스라져 가는 생명(시바)과 이를 靜觀하는 섭리(브라만)의 신화가 840m에 걸쳐 그려져 있다. 생성과 소멸과 윤회의 고리에서 가장 치열한 삶은 역시 전쟁이다. 억겁의 신화는 여기 98m에 이르는 벽면에 그치지 않은 자야바르만의 전쟁이야기를 남겨놓았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알렉산더와 진시황과 그리고 이라크 전란의 피비린내를 본다. 그리고 이 거대한 건축물이 이 시대 이 사람들에게 보낼 메시지를 음미해본다. 위정자들은 왜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는가? 그 해답을 호텔의 로비에서 주은 종이쪽지에서 본다.

 

 

데바라자(devaraja) 라는 말은 ‘신왕(神王) 숭배신앙’으로 힌두교에 토착 종교를 덧칠한 것이다. 왕은 우주를 지배하는 신성한 존재이고, 힌두교의 시바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난 것이며, 남근(男根) 모양의 우상인 '링가'(liga)가 시바 신의 본질을 나타낸다. 왕은 반드시 링가의 대리인인 고위 성직자가 집전하는 복잡하고 신비로운 의식을 통하여 왕권의 신성(神性)을 부여받아 신격화되면서 왕국의 안전 보장을 담보한다.

 

‘데바라자’ - 한때 동아시아에 ‘교조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유행한 일이 있었다. 이 말은 동의 관계를 이룬다. 우유바다를 저어 치즈를 만드는 창세기의 신화에 부족국가 시대의 민족 전쟁 그리고 자야바라만의 현실 등이 교묘하게 범벅된 이 벽면은 역사를 반추하는 사람을 명상하게 하는 거울이다.

 

그 신전은 호수에 떠 있고 그 신전을 옹위하는 회랑의 성벽은 해자에 떠 있어 마치 호수위의 성처럼 보인다. 그 물들이 바다를 상징한다면 이 건축물을 설계한 사람은 중앙탑을 히말라야로 해자의 물을 대서양 삼아 난세를 구제할 비슈누신과 자신의 왕업을 성전에 동일시한 새로운 우주의 창조를 꿈꾸었던 것이다. 베토벤의 ‘에로이카’나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으로는 그 스케일을 감당하기 벅차지만 정적의 달밤에 그 승리의 노래를 여기서 들어보고 싶다.

 

제국의 수도 : 앙코르 톰은 앙코르 제국의 수도다. 당연히 동서남북에 대문이 있는 성곽 도시다. 천년의 古都! 배우가 떠나버린 舞臺의 정적을 천년이나 지켜온 도시! 관광객들은 어지럽게 이 무대에 올라서 두서없는 이야기를 지껄인다. 그들은 우루루 몰려다니며 태양의 조명아래 사진을 찍고 함부로 물을 마시고 무너진 세트를 밟으며 돌아다닌다. 이 난잡한 배우를 무너진 무대는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지금 사람들이 구경하는 코끼리 테라스와 몇몇 신전은 도시의 서북쪽 1/4에 불과하다. 그 나머지에 정작 시장이 있고 관공서가 있고 성민의 주택이 있었을 것이다. 정작 배우들은 어디 있는가? 이 도시의 중심에 바욘 사원이 있는데 그 돌벽의 조각에 살아있다.

 

풍속화 : 문자의 기록 보다 더 생생한 것이 그림이다. 단원이나 혜원의 그림에서 우리는 과거를 본다. 그러나 풍속화라면 천년전 북송의 서울 개봉을 그린 장택단의 ‘淸明上下圖’ 이 한 권의 그림을 빼 놓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앙코르 톰이 있었을 때 중국의 서울이 바로 개봉이요 두 도시의 인구도 100만 내외로 비슷했다.

 

鬼氣와 仁慈 : 얼핏 보면 바이욘 사원은 귀신이 나올듯한 울퉁불퉁하고 무시무시한 돌무지에 불과하다.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면 이 무의미한 죽음의 돌덩이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근육처럼 꿈틀거리며 부처님의 얼굴을 만들어 낸다. 왜 어린이들은 수염이 길고 쭈굴쭈굴한 낯선 할아버지를 만나면 울까? 그러다가 그 품안에 안겨 생긋생긋 웃는 것일까?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낯익은 것에 대한 친근감! 대기의 숨을 모아 쉬는 듯 靜謐한 이 모습은 크메르인의 ‘큰 바위 얼굴’일까? 불상의 迷路에 인면상을 얹은 탑은 피라미드의 정점을 향해 모두 37기를 헤아리니 대략 140이나 되는 두상이 이 탑속에 상주하는 셈이다. 그 옛날에는 중앙탑을 황금으로 칠했다니 푸른 하늘에 태양처럼 찬연히 빛났을 것이다.

나는 이 돌벽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천년의 역사! 앙코르인들은 여기 고스란히 살아남아있다.

 

아이를 낳는 어머니! 아이와 놀고 있는 여자, 아이의 머리에서 이를 잡아주고 있는 여자,

씨름 장면, 닭싸움, 투견, 돼지 싸움, 장기 두기, 써커스 등 놀이하는 크메르인,

 

 

 

닭싸움을 하는 장면에서 나는 헤밍웨이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그린 투우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발리에서 유행한다는 닭싸움에서 다시 김유정의 동백꽃을 그려본다. 닭의 주인은 벌거숭이에 오직 아랫도리를 천으로 가렸을 뿐이다. 그 긴 수건은 일본의 훈도시(裙)를 닮았다. 어떤 일본인은 훈도시라는 책을 썼는데 목도리를 닮은 한 장의 긴 수건으로 목욕을 하는 장면 그리고 잠수하며 발에 묶어 상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삽화를 보고 신기했던 일이 생각난다. 참으로 한 장의 수건을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하는 민족은 드물 것이다. 생각해보면 따스한 지중해의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은 한 장의 수건과 핀 한 개로 몸을 가렸다. 그들은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올려 뒷꼭지에서 양파처럼 묶어버렸다. 정말 간단한 머리손질인데 이 모습에서 나는 조선의 상투를 그리고 아랫도리에서 일본의 훈도시를 그려보며 문화가 바다를 따라 흘러가며 變容되는 軌迹을 그려본다. 언어도 음식도 이를 類推하면 그 원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혜원의 그림이 살아난 듯한 ‘스캔들’이라는 영화를 본 일이 있었다. 아무리 멋을 부리고 態를 지어도 모던한 냄새는 지울 수 없다. 그에 비할 수는 없지만 이 조각에 살아있는 이 사람들은 영화에 비하면 패러디나 허구가 아닌 원본이다.

 

두 마리의 닭을 대치시킨 주인은 무릎을 꿇고 상대를 노려보고 있다. 주위에는 여섯명이 프로 레슬링에서 집단 난투가 벌어지듯 엉켜있는데 그 눈동자는 모두 두 마리의 닭에 집중되어 있다. 이 혼란과 무서운 집중이 보여주는 긴장감! 나는 일찍이 이런 혼란스러운 구도가 이렇게 태풍전야의 정적을 만들어낸 장면을 본 일이 없다. 이 목숨을 건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것은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집중된 눈빛과 어깨와 허벅지와 종아리의 곡선과 섬세한 손놀림이다. 이 動線은 선율을 따라 움직이는 무용수처럼 부드럽다.

 

투견을 하는 사람들의 머리는 곱슬머리다. 아프리카인들이 자연 파머도 부족해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땋아 뒤로 넘긴 그런 모양이다. 목에는 목걸이를 하고 있다. 저 고요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소녀’는 한 편의 소설과 영화를 만들어 냈다. 아마 작가는 이 한 장의 그림으로 두 편 세 편의 소설도 더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앙코르 신전 수 천의 압살라들의 귀걸이 목걸이라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인간의 상상력이 풍부한 것인가? 아니면 빈곤한 것인가? 이 구도는 재미있다. 닭싸움과 달리 두 마리의 개는 서로 사랑을 나누려는 여인처럼 애교를 떨고 있다. 오히려 곱슬머리의 사내들이 긴장하고 있다. 오른쪽 사내는 두 손가락으로 승리의 V를 그리고 있다. 이들의 高揚된 전투적 분위기와 愛撫하려는듯 서로를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두 마리의 개가 빚어내는 모순이 웃음을 자아낸다.

 

사내들이 힘을 쓰고 있는 어깨와 허리의 각도와 선의 입체적 표현에 비해 섬세한 그 발가락은 이집트벽화처럼 평면기법인데 발목은 평발처럼 투박하다. 이들의 머리 위에는 문양이 새겨진 휘장이 걸려있는데 범상한 솜씨가 아니다. 아마 아라비아에서 건너온 양탄자의 문양일 가능성이 높다. 장식과 조각의 기법과 구조는 아무래도 나일강에서부터 아랍과 인도를 거쳐 배로 흘러온듯하다. 그렇다면 외로운 황하에 비해서 이 한조각의 그림이 示唆하는 이 장소의 문화는 나일-티그리스-간지스를 거처치는 3대문명의 풍요한 젖줄에 기대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서당의 그림은 재미있다. 단원의 서당에서는 회초리를 맞는 어린이가 보인다. 나는 그 서당이 어디 있었는지 궁금하다. 앙코르의 서당 학생들은 나이가 들어 보인다. 상투를 틀고 강의를 하는 훈장의 뒤에는 토론하는 장로들이 보인다. 학생들은 성인으로 보이는데 뒤에는 졸고 있는 학생이 보인다. 회초리를 맞는 조선의 학동과 졸고 있는 앙코르의 학생! 컴퓨터가 생기고 전기가 발달하고 밤문화가 일상이 되면서 조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강사의 뒤에는 장로들이 보이는데 이들은 무언가 토론을 하는 모습이다. 남녀노소를 가릴 것없이 관심사를 두고 토론하는 것이 진정한 학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그리스인의 파티-그 아카데미가 진정한 학교일 것이다. 조선의 사랑방은 그런 문화였던 것인데...수강자와 강사는 모두 跪坐를 하고 있다. 무릎을 꿇고 앉는 단정한 모습은 좌식생활이나 동양문화에서 보편적인 것인데 그 단아한 전형은 루부르의 이집트 서기상에 남아있다. 行動擧止라는 말은 곧 일어서고 앉고 걷는 인간의 일상이요 그 모습은 무용이라는 예술로 다듬어져 우리의 시선을 부드럽게 한다. 대통령의 걸음걸이가 수근거림이 된 일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걷기학교(워킹스쿨)도 있다. 걸음걸이는 가정교육이다. 앉는 자세는 좌상이라는 예술장르를 만들어냈다. 이 학교에서 어떤 과목의 수업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오직 종교에 대한 가르침은 분명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뿐!

 

물고기가 뱃전에서 헤엄치고 그 심연에 집이 드러나는 구도는 샤갈을 연상하게 한다. 지붕위에 떠다니는 물고기의 모습에서 가야의 냄새를 맡는다. 김해의 수로왕릉에는 물고기가 그려져 있고 그 연원은 인도라고 K교수는 헬리콥터를 몰고 다니며 열강을 하곤 했었는데...그 물고기가 직항했을 리는 없다. 통과할 수 있는 정거장은 모두 지나고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렸을 것이다. 궁금하면 김수로왕릉에서 그 물고기를 꼭 찾아보기 바란다. 이 물고기들을 똔레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구별해낼 수 있을까? 마치 반구대의 고래를 식별해내듯이...

 

집은 모두 맞배지붕 형식인데 이 용어가 재미있다. 집이란 무엇인가? 기둥을 네 개 세우고 지붕을 씌우면 집이 되는 것인데 그 지붕이란 꼭 배를 뒤집어 놓은 형식이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지붕은 거룻배를 뒤집어 놓은 듯 반달형인데 서울의 기와집은 날렵한 추녀를 자랑한다. 남방의 추녀들은 한술 더 떠서 꼭 바이킹의 배들을 뒤집어 놓은듯하다. 거센 파도를 헤치는 사람들과 잔잔한 호수를 건너가는 사람들의 배가 모두 같을 리는 없다. 그러나 이 집들은 모두 중국식으로 측면의 추녀가 한 치의 여유도 없이 기둥과 맞붙어 있다. 그리고 기와를 얹어놓았다. 나는 그 기와를 자세히 본다. 중국의 남방에는 동남아에서 흔히 보는 우리 園頭幕같은 高床式주택이 있고 또 북서에는 지중해변에서 볼 수 있는 동굴주택도 있다. 이 앙코르의 제국 왕궁은 방콕에서 볼 수 있는 목조였다는 기록이 있다는데 이 벽화에는 분명 중국의 기와를 사용한 사합원이 보인다. 그렇다면 차이나타운이 있었다는 말인가? 아니다. 중국의 주거문화가 여기 있었다는 단서다. 이 문화적 코드를 따라 이 페허 어디에서 -정확하게 서북을 제외한 저 밀림이 되어버린 어디서 기와를 찾아낸다면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시대 이웃에는 중국의 宋(AD960~AD1279)나라가 있었는데 장택단은 풍속화로 인구가 약 80만 이었다는 수도 汴京(변경-지금의 카이펑)의 성안과 근교의 생활모습을 훌륭하게 묘사해냈다. 노동자와 소시민과 시장과 이름 없는 장인의 피와 땀의 결정체인 홍교(虹橋)나 하토교(下土橋)의 건축도면을 완벽하게 묘사해냈다. 한 장의 두루마리 평면에 인물·건축·교통수단·나무·강물의 흐름 등 도시전체를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도록 교묘하게 처리하고 있으며 통일미가 매우 뛰어나다. 이 그림과 여기 한때 인구가 100만이었다는 이 앙코르의 벽화를 비교하면 끝없는 이야기가 솟아날 것 같다.

 

앙코르의 벽화에는 사슴을 잡아먹는 큰 물고기, 나무 위에서 장난치는 원숭이, 맹수에게 쫓겨 나무 위로 피신한 남자, 여러 가지 요리장면, 서당에서 공부하는 모습, 주거 모습, 상점의 모습, 신전을 건설하는 모습 끝이 없다. 이 벽화를 보러 나는 다시 이곳에 올 것이다.

 

 

 

황성옛터 : 암울한 시절 이 노래를 지은 왕평은 경북 영천 사람이다. 지금 노래는 없지만 정작 나는 그 성터의 주인공이 되어있다. 케이폭[kapok] 나무들은 바람을 타고 석벽에 씨를 뿌리고 천년을 살아 드디어 성벽을 감고 무너뜨리고 타고 넘어 들어와 이 신전의 주인이 되었다. 그 나무의 뿌리에서 나는 신성을 느낀다. 성벽을 따라 소떼를 모는 목동은 모두 어린이- 심우도를 보는 것 같다. 하늘은 모두 밀림이 가리고 나뭇잎 사이로 햇빛은 흘러든다. 선재동자는 돌담을 따라 걷는다. 마치 역사의 벽화 속을 걸어 가듯이...

 

프놈방켄의 일몰 : 이 도시가 부러운 것은 사면이 탁 트인 완벽한 평원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앙코르인은 산악인 천연의 요새인 서울을 부러워했을지 모르겠지만 표고차가 1m도 안 되는 이 밀림의 평원을 나는 또 부러워하고 있다. 북경이 낙타의 都市라면 앙코르는 코끼리의 도시다. 자금성이야 물론 사자와 용이 상징이지만 5천년 장사의 나라 북경의 상징은 누가 뭐라 해도 서역의 먼지를 뒤집어쓴 실크로드의 낙타다. 그 낙타의 등에 부와 문화가 실려 동서를 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의 상징은 나가(코부라)와 코끼리다. 코끼리는 남방의 풍부한 물산을 황금실로 짠 등받이에 얹고 밀림을 헤치며 이 제국을 만들었다.

 

초기 왕조의 진산이었던 프놈방켄은 이 평원의 유일한 언덕으로 표고 65미터라는데 앙코르 왓의 중앙탑의 높이도 그와 같다니 이 聖山의 높이에 맞춘 것일까? 멀리 똔레삽 호수와 동서의 저수지를 바라본다. 하늘이 내린 물은 여기서 저수지와 호수를 채우고 중국 칭하이 성(靑海省) 티베트 고원의 해발 4,900m에서 발원하여 4,350㎞에 이르는 메콩강의 수위를 높인다. 기록은 타인에게 기록일 뿐이지만 여행을 해본 사람에게는 추억과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 기록을 따라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무슨 그런 충동을!

 

길에서 :

비가 오면 진흙 되고/ 해가 뜨면 돌이 되는/ 붉은 먼지의 길/서쪽으로 가는 길

종이를 자른 듯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그 지평선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길가에는 점을 찍듯 농가가 이어지고 있었다.

물웅덩이에서 연꽃은 피고 蓮根은 아이들의 입에서 향기를 낸다.

 

머드팩을 마친 소들은 한낮의 햇빛이 다사롭고 椰子樹 그늘에서 아기는 잠든다.

사시사철 비가 오면 씨 뿌리고 물 빠지면 거두는

그 논은 하늘이 시작되는 곳에서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달이 뜨는 곳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대지가 시작되고 대지가 끝나는 그 중심에서

보이는 것은 우러러 한 그루의 야자수 하나의 달 그리고 가없는 하늘...

더 바라보이는 것도

더 바라볼 것도 없는

더 기다려야할 시간도

도 추억해야할 시간도 없는

하늘과 땅 한가운데서

야자수처럼 우뚝 내 생명을 뽐낼

그 하늘과 땅 한가운데서...

 

내 조상들은 모두 神

그 이름이 브라만이든 시바이든 비슈누이든 ... *

  

 

'기행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앙코르의 추억<2>  (0) 2010.03.02
앙코르의 추억  (0) 2010.03.01
오색그린야드호텔-멕시코문물전시관  (0) 2010.02.26
권금산장에서...  (0) 2010.02.25
화진포에서...  (0) 2010.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