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피치의 우첼로 - 시간과 공간의 퍼즐
내게 신지식을 알려주곤 하는 친구가 이탈리아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와 몇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 어디서 본 듯한 전투의 한 장면... 우피치에 소장된 우첼로의 ‘산 로마노 전투’ -
1432년 6월 1일 산로마노인가르파냐나 : 피렌체가 기용한 용병대장 ‘니콜로 다 톨렌티노’는 황갈색 말을 타고 있고 얼굴은 투구로 가린 채 강인한 어깨로 긴 창을 끌어당겨 상대를 겨누고 있다. 그가 온 힘을 한 곳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등자를 한껏 버티고 있는 다리의 긴장감과 놀란 말의 눈동자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투구에 가려진 그의 결연한 표정을 오히려 상상하고도 남을 것 같다.
백마에 탄 채 쓰러지는 시에나 군대의 장수 ‘베르나디노 델라 치아르다’는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길게 누운 채 장창을 떨어뜨린 오른 손은 힘없이 다섯 손 가락을 펴고 있고 허공을 향한 고개는 패배와 절망의 순간을 이 공간에 고장시켜 놓고 있다.
도시국가 로마 : 어는 역사책에서 11세기의 이탈리아를 보니 조각보라고할까? 모자이크 타일이라고 할까? 연결이 쉽질 않다 아무튼 십자군전쟁을 거치면서 상업도시로 발돋움한 피렌체가 피사항구에 접근하기 위해 시에나와 벌인 1432년 산로마노 전투의 장소는 지금 산로마노인가르파냐나 - 피사 인근 즉 루카부근으로 보인다. 시에나는 피렌체의 정남쪽에 있다. 루카에서 피렌체까지 약 100킬로라면 피렌체와 시에나와 삼각형을 이루는데 대략 1시간 정도 거리일까? 교토-오사카-나라의 삼각형을 생각하면 그 옛날 하남 위례성의 서울-인천-수원의 삼각형이 떠오르곤 한다. 이 대단한 전쟁화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도시국가 유럽을 떠올리게 하고 또 부족연맹처럼 유럽연합을 연상하게 한다. 아무튼 이 그림 한 조각을 통해 잠시 들렀던 1989년의 우피치가 떠올랐고 또 이 그림에서 피사로 가는 길의 전투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부터 150년 쯤 뒤에 부산진을 침범하는 왜군의 전쟁화를 겹쳐보면서...
요즘 한숨을 돌리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진숙(롤리타는 없다 1, 2 - 시대를 훔친 미술 - 위대한 미술책), 김상근(천재들의 도시 피렌체 / 21세기북스), 김영숙(<그림수다>, <현대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산책> 등 미술관련 서적을 20여 권 저술) 등등 여러분의 글들에서 우첼로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 중 백과사전에 공개된 한 분의 해설을 바탕으로...
우첼로의 대표작으로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각각 흩어져 소장되어 있는 〈산 로마노 전투〉 3부작이다... 〈산 로마노 전투〉는 피렌체가 시에나(피렌체 正南(정남))와 루카(피렌체 서쪽 피사 옆...)를 점령하게 된 1432년 6월 1일의 전투를 기념한 작품이다. 파울로 우첼로의 이 유명한 작품은 그가 원근법의 조화에 충실한 미술 이론가에 머물지 않고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 정신에 충실했음을 보여준다. 캔버스라는 좁은 공간에 전투의 생생한 현장감과 혼란을 몰아넣기 위해 그는 과감한 생략을 시도했고, 관점의 축소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독창적인 시도 때문에 〈산 로마노 전투〉 3부작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투 현장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마력을 가지게 되었다.
1435년 무렵에 이 작품을 주문한 사람은 피렌체의 명문가였던 바르톨리니 살림베니(Bartolini Salimbeni)였고, 우첼로는 약 20년에 걸쳐 이 대작을 완성했다. 워낙 유명하고 작품 구도와 관련하여 논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위대한 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이 작품을 탐냈고, 결국 중앙 패널이 메디치 가문으로 넘어온 다음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16세기 말에 기록된 우피치 미술관의 소장품 목록에서 이 작품은 〈마상 창 시합의 장면〉이라고 잘못 기록될 만큼 마상 창 시합을 겨루는 군사들의 모습이 축약되어 그려져 있다. 원근법의 사실적 구현에 끈질기게 매달렸던 우첼로는 부러져 땅에 떨어져 있는 창의 모습을 통해 지극히 단순화된 사실주의를 부여했다. 우첼로의 〈산 로마노 전투〉는 원근법에 충실한 사실주의와 전쟁의 장면을 포착한 내러티브 미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모범을 보여준 작품이다. 사실성과 서사성이 공존할 수 있는 그림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킴으로써 우첼로는 예술의 형식과 내용을 조화시킨 인물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1460년대에 우르비노 지방에서 활동했던 우첼로는 1475년 12월 10일, 일흔여덟의 나이로 피렌체에 돌아와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피렌체의 산토 스피리토 성당에 묻혔다.<*>
피렌체가 기용한 용병대장 ‘니콜로 다 톨렌티노’는 황갈색 말을 ...
백마에 탄 채 쓰러지는 시에나 군대의 장수 ‘베르나디노 델라 치아르다’는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11세기의 이탈리아를 보니 조각보라고할까? 모자이크 타일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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