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음

그러나 우리는...우리는 잠시 망설이자

양효성 2017. 9. 1. 08:30


그러나 우리는...우리는 잠시 망설이자

 

나는 아이가 되어 꿈을 꾸어 보는 것인데...

감긴 눈을 뜰 수도 없는...

눈부신 햇살이여...

어머니의 뱃속을 헤엄칠 때 난 나만의 세계를 관념했다...

우주보다 너른

 

세상에 나와

해바라기를 우러르며

해바라기처럼 자랐을 때...

 

밭두둑을 기어가는 개미를 보았다.

개미는 나의 관념을 물고 굴로 들어갔다.

 

나는 아이가 되어 꿈을 꾸어 보는 것인데,

개미의 먹이에 나의 우주를 담을 수는 없다...

 

쥐의 얼굴을 하고 넥타이를 맨 주둥이에 수염을 단 한 떼거리의 무리들이 다리를 지나갔다.

런던 브릿지이든

퐁뇌프의 다리든

루거챠오(蘆溝橋)이든

니혼바시이든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이든

잠수교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모자를 깊이 눌러 쓴

턱주가리에 수염으로 쥐의 얼굴이란 걸 알 수 있는...

개미는 갈래길에서 망설임 없이 굴로 들어갔다...

줄지어...

줄지어...

줄지어...

88888...

66666...

99999...

33333...

 

뒤집어지든...자빠지든...엎어지든...고꾸라지든...

득도(得道)한 신도(信徒)처럼...

李箱烏瞰도처럼...

.

.

.

.

 

그러나 우리는...

우리는 잠시 망설이자-망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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