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없는 나라 - 백두산의 국경선[3]
센양[瀋陽]에서 急就章 번역이 고비를 맞고 있던 겨울이었다. 친구들이 백두산에 가자는 연락을 해왔다. 북경에서 나를 찾아온다는 선약도 미루고 책도 덮어두고 渤海를 건너오는 친구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白頭山[그들은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하니 백두산은 백두산이지만 人間들이 부르는 이름으로는 꼭 그런 것도 아니지만]이 목표였다. 山이라고는 대청봉에도 올라보지 나에게 황당한 일이었지만 중국인들에게 묻고 물어 서쪽 입구는 개방되어 있고 또 단체관광 같은 것은 없으며 있다고 해도 50세 이상은 받아주지 않는다고 했는데 우리들은 모두 환갑을 넘긴 나이였다. 나는 위롱푸[낙타의 털을 안감으로 하고 방풍처리한 에스키모사람들이나 입는 내복] 와 중국에서는 제일 따뜻하다는 ‘보스동’인가 하는 오리털 점퍼를 사서 零下40度라는 정상에 대비하고 등산화는 인편에 공수하도록 했다.
우리는 夜間列車를 타고 새벽에 퉁화[通化]에 내려 간단히 요기를 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한 두 시간 가면 國內城으로 이름난 집안[集安]이다. 우리는 백두산 기슭을 따라 5시간 넘게 길게 기차를 탔다. 최서해의 탈출기로 알려진 간도문학이라는 이름도 이런 情景속에서 일궈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시커먼 석탄을 쌓아 놓은 광산촌 그리고 옥수수를 볏가리처럼 싸 올린 농촌을 지나며 눈을 머금은 하늘을 이고 개여울이 흐른다. 밖은 영하20도가 기본인데 개울에는 고기를 잡는 농민들이 보인다. 기름때 묻은 옷을 입은 승객들은 보퉁이를 안고 표정없는 눈동자를 객창에 고정한 채 말이 없다. 도시인들의 재잘거림에는 자연에 순응할 태도가 보이지 않는다. 농민들은 구름이 가져다주는 비와 바람이 물고 오는 메뚜기떼를 걱정한다[風은 본래 구름이 몰고 오는 메뚜기떼(虫-蝗蟲)를 두려워한 글자였다.] 그들의 고정된 눈에는 孤獨과 思索의 年輪이 묻어 있다.
이곳에는 一渡白河 二渡白河처럼 번호가 붙은 汽車驛이 늘어서 있다. 첫여울- 두여울 쯤으로 옮길 수 있는데 백하를 건너는 나루를 의미했던 것 같다. 북경에도 五道口가 있는데 다섯 번째 네거리쯤으로 해석할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것은 禪僧의 말씀이고 ‘山이 있으면 물줄기가 있다’는 것이 俗人의 생각인데 이 山의 자락이 넓은 만큼 물줄기도 많고 그 하나가 바이허[白河]다.
松江河에 내리자 승객들은 순식간에 흩어져버리고 광장은 썰렁해졌다. 택시를 전세내고 창바이산 입구에서 표를 사고 짚차를 얻어 거의 정상까지 이르렀을 때는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있었다. 짧은 겨울해에 빛나는 도로는 반질반질했다. 등산로는 모두 계단으로 다듬어져 있는 모양인데 쌓인 눈을 치우느라 좌우에 雪壁이 城砦처럼 쌓여 눈담장의 골목을 걷는 형상이었다. 휴게소의 너른 광장에는 우리를 데려갈 짚 차 한 대뿐 구름과 바람소리를 빼놓고는 살아있는 것이 없었다.
눈계단을 오르는데 가빠오는 숨결이 나이가 알렸다. 이윽고 산마루에 오르자 바람이 온몸을 감싸 회오리처럼 하늘로 날려오를 기세였다.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천지의 暗靑色물은 소름이 기치도록 沈黙하고 있었다. 조산시대에 정계비를 세우고 또 지금은 국경선이라는 그곳이 어디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압록강에서 단동을 지나 호산장성 수풍댐 그리고 그해를 걸러 네 번째로 갈수없는 나라 백두산의 경계에서 바라본 남쪽은 푸른하늘과 구름과 세찬 바람만이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원시의 협곡을 잠시 내려다보고 전세택시에 올라 시내로 돌아왓다. 밥집을 찾기가 어려웠다. 몇 군데 돌다가 국적불명의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 택시의 시단을 연장해서 그 길로 통화까지 칠흑의 밤길을 달렸다.
PS : 결국 '急就章'은 심양에서 겨울을 나고 현지출판을 접은 채 이듬해 한국의 '박이정'에서 무사히 출간되었다. <*>
백두산천지 2007년11월11일 오후4시05분
백두산가는길의 광산촌
역구내로 들어오며 철로는 가로 놓여 동쪽으로 가고
승객들은 아무곳으로나 오르고 내린다. 역 뒤쪽의 간이휴게소의 노점상인이 추위를 잊고있다.
굴뚝이 보이고...
건너편 철로와-
영하30도의 추위도 아랑곳없이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는 ...
농가의 울타리는 대약진운동의 아스라한 흔적을 보여주고...
승객들은 겨울처럼 표정이 없다.
백두산 서부능선으로 가는 길은 이 역에서 내려야한다.
송당의 시내를 벗어나면...
반질반질한 도로가 곧장 백두산[중국은 창바이산]으로 뻗어있다
백두산공원 경내의 도로는 관광객이 통제되는데도 말끔히 치워져 있고...
흰구름 이는 곳에 천지가 있다.
짚차로 자작나무 군락을 지나면
이제 눈길을 달려 하늘로 오르는데-
자작나무의 살결은 눈빛을 닮았다
치창에 비치는 해들이 기리키는 곳에 실낱같은 길이 보이고...그 길을 다 올라가야
눈덮인 등성이가 구름에 닿는다
인적이 끊긴 휴게소에는 다시 나를 태우갈 짚차만 뎅그라니 놓여 있고...
돌계단의 좌우로 백설의 담장이 이어진다.
이제 천지가 보이는 곳에 이르면 ...
세찬 바람이 눈을 쓸어가는 그 아래
천지가 보이는데 한바퀴돌 수 있을 것같지만 ...
겨우 몇초를 여기서 버틴 것 같다.
다시 내려오는 길-
구름바다는 노을을 품고-
바람은 한결 잦아들었다.
원시의 협곡은 칼바위들이 위태롭게 서 있는데-
갑옷도 찌를 기세다.
직각의 절벽을 파고드는 물길은 유유하고-
손바닥만한 노을에 소나무 한 가지 - 그옛날 단군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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