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알프스의 추억[10] 제7일 8월14일[土]
시라가와꼬의 합장마을
千年의 화전민에게는
千年의 密語가 있어
千年을 삭고
새로 이은 지붕에
겨울마다 白雪 덮이면
봄볕이 그 눈을 녹였네.
벼는 말없이 여름을 나고
가을엔 고개를 숙여
겨울이면
화톳불아래
마을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었나니...
유네스코 마을로 : 다까야마[高山]에서 시라가와꼬[白川鄕]를 경유하여 가나자와[金澤]로 가는 버스는
8:50[金], 9:50, 10:50[不定期], 11:50[金], 12:50[金], 13:50, 15:50[金], 17:50분 이렇게 8번 정도 있는데 그 가운데 가나자와[金澤]까지 가는 것은 [金]으로 표시한 네 번이다. 시간표를 자세하게 적어두는 것은 이 시간과 거리를 몰라 떠나기 전에 노심초사했기 때문이다.
8시50분 高山 출발-9시45분에 白川鄕 도착 3시간 둘러보고 1시50분에 金澤으로 출발해서 오후 3시에 도착하면 혹 카가[加賀]의 해변에서 저녁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다음날 아침 공항까지는 택시를 타도 30분이면 충분하다.
버스표는 이미 그렇게 사두었다.
세 사람은 호텔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Daily[미국식 역전 수퍼]’에 길이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어제 온천저울을 기준으로 모두 2㎏씩 공평하게 몸무게가 늘어 있었다. 김밥과 미소시루[일본 된장국]에 젓가락에 짠지까지 벌려놓았다. 게다가 커피까지 한 잔 마시니 五星호텔 아침이 부럽지 않았다.
정류장은 코앞이다. 이 버스는 좌석이 지정되지 않아 미리 줄을 섰는데 역시 서양사람들이 뒤이어 나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자리는 모두 찬다. 험한 산길을 예상했는데 굴을 몇 개 지날 뿐 너무 쉽게 구름이 피어오르는 시라가와꼬의 합장촌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暗靑과 진초록의 깊은 산들은 습기를 머금고 한껏 숨을 내뿜고 있는데 그것이 구름으로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杜牧의 詩에 ‘白雲生處有人家[흰 구른 이는 곳에 인가가 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집집마다 띠풀지붕에서 바로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은 장관이었다. 구름에 더해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300円씩하는 중형락카에는 배낭 2개가 겨우 들어갔다.
오른쪽 흰구름 이는 곳에 시라가와꼬가 있다.
민가원의 백천촌 성인식
백일홍의 무지개
연못에 떠 있는 작은 집
비내리는 매향암
도롱이와 지게가 걸려있는...
개울물은 세월을 잊고-
아직 성인식은 끝나지 않아...
출렁다리에는 G선상의 아리아처럼 악보를 그리는 나그네들-
合掌마을 民家園 : 마침 내리는 비에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물은 庄川에 깔린 자갈을 타고 춤을 추며 흰 소매를 치켜들었다. 이 시내를 중심으로 다리 건너 마을이 있고 안쪽에는 9채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합장가옥이 모여 있다. 합장은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부처님에게 절을 하듯 지붕이 손바닥을 모은 것 같다는 ‘合掌’이다.
기둥을 세우고 도리를 가로질러 상자를 만들어 칸을 나누고 대들보를 세워 도리에 서까래를 늘여 풀이든 갈대든 지붕을 얹으면 비바람을 막는 집은 세워진다.
500円 입장료를 내고 야외박물관에 들어서자 백천촌[白川村]성인식이 열리고 있다. 대청에 기모노를 입은 한 무리의 소녀와 넥타이를 맨 청년들이 빙 둘러앉아 있고 信称[稱]寺 뜨락의 텐트에는 친인척들이 단정히 앉아 그들의 장래를 그려보고 있는 듯 했다. 이 청년들 앞에 검은 원피스를 입은 현악사중주단이 축주를 해주는데 그 한 사람은 이곳 출신으로 보였다. 서양의 현악과 기모노와 유네스코 전통가옥인 信称寺가 비에 젖어 어우러지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드난살이로 다난했던 내 어린 시절은 내게 돌아갈 고향을 없애버렸다. 정을 줄 수도 붙일 수도 없었던 시대에 이런 사람들이 성인식을 해줄 수도 없었고 또 내 아이에게도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과연 도시에서 출세하고 더 넓은 세상을 본다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만한 행복이 되는 것인가?
오른 쪽으로 도니 물비단소리폭포[水織音の滝]가 나온다. 비단을 걸어놓은 듯 엷은 물이 흐르는 가락이라는 詩的표현이다. 폭포 옆에는 장작을 쌓아놓은 것이 시골냄새를 더한다. 개울을 건너 방앗간이 있고 200년쯤 지어진 가장 오래된 山下陽朗씨의 집 앞에는 백일홍이 가득 피었다. 이번에는 나무가 아닌 풀꽃 백일홍이다. 노랑 빨강 주황 분홍 색색의 백일홍은 피어오르는 구름과 방금 비에 씻겨 더욱 신선하다.
‘靜’ : 그 집 뒤뜰에 梅香庵이라는 茶室이 있다. 아마 건축물가운데 이렇게 간결하면서 가장 너른 우주를 담은 양식은 드물 것이다. 한 잔의 茶와 한 칸의 방! 구름이 춤추고 냇물이 노래하며 향기를 실어오는 바람과 눈앞에 어른거리는 꽃! 그 모든 것 가운데 사람이 갖은 것은 두 손에 모은 찻잔이 전부인 그런! 해남에 모든 禪僧이 잊지 못하는 一枝庵이라는 草衣의 암자가 있다. 이곳이야말로 잠시 쉴 곳이다. 여기 도꼬노마에 話頭가 있다면 이 한 글자다.
‘靜’
비는 억세게 내린다. 비로봉 한 봉우리가 1만2천 골짜기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마을의 鎭山은 白山이다. 한 자만 더 붙이면 白頭山이 된다. 백산마을의 白川 또는 白江 - 백강이라면 일본 사람들은 부여의 백마강을 그냥 백강이라고 부른다. 660년 부여가 함락되고 3년 뒤 일본의 원군이 이 강에서 전멸했고 백제의 주유성이 唐軍에 潰滅되면서 백제는 완전히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670년 倭는 국호를 日本으로 바꿨다[三國史記]. 그 기억은 일본인과 그 역사에 각인되었다. ‘白[희다]’는 태양이라는 말과 묶여 있다고 이미 말했었다. ‘해마루’산인 백두산[2750m]과 이 산의 높이는 비슷한데 이 山[2702m]을 일본인들은 三大名山으로 추앙한다고 한다. 그리고 백산신앙이라는 책도 여러 종류 있다.
이 산의 마루에는 天池도 있고 적석총도 있다는데 그 돌무지는 九州의 남단에 있는 가라구니다께의 정상과 너무 닮았다. 이 神社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1700미터의 ‘가라구니다께’는 일본지도에 ‘韓國岳’으로 표기되어 있고 ‘三韓의 언덕’으로도 읽을 수 있고 ‘駕洛國의 언덕’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후자가 유력하다. 이 일대를 ‘えび-에비’라고 부르는데 ‘애비’와 발음이 같은 것도 흥미롭다. 이 부분을 잘 읽으면 任那日本府라는 것이 사실은 伽倻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고 그들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추측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新羅’를 일본에서는 ‘시라기’라고 읽으니 ‘시라가와꼬[白川鄕]’는 ‘新羅川의 마을’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산맥의 御前峰에서 須惠器와 중국의 문물과 함께 고려시대의 東國通寶와 朝鮮通寶도 발굴되었다니 왜 그 이전의 유물이 없었겠는가? 삼국시대에 다투어 倭와의 교류가 활발했으니 어떤 연관이 있을지 추적의 대상이다.
비는 무심코 내린다.
누군가-
‘이대로 계속 내렸으면...’
하고 중얼 거린다.
모두들 같은 생각이다.
이만하면 즐거운 여행이었다는 연극의 마지막 대사처럼...
바로 앞에도 뭉툭한 통나무가 가로지른 도리 뒤에 조촐한 鳩谷八幡神社가 보이고 사람들은 우산을 받치고 부지런히 빗길을 걷는다.
그 사이 李선생은 東しな家에 들러 燈籠, 도롱이, 설피와 짚신, 지게, 톱과 농기구 등 전시된 일상용품을 보고 돌아온다. 티베트 원산이라는 지게는 우리와 빼듯이 닮았다. 티베트에서 ‘티게’라고 한다는데 구개음화로 ‘지게’가 된 것이 아닌지...
소화18년[1943]梅野金一郞은 이 마을을 찾아 ‘飛驒の夜明け’의 ‘孤村のともし火’에서 이곳을 “地上樂園 - 深山も 古里なれば これ地上の樂園”으로 표현했다.
1967년에 가수량집단마을이 이주함에 따라 백천촌 주관으로 보존마을이 형성되고 1995년에 傳統的建造物群保存地區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으니 역사가 오래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초가에 비해 이런 양식의 건물이 주민의 삶터로 지속된 기간은 오히려 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올해 안동의 하회마을과 양동의 양반가들이 유네스코에 등재된다니 눈여겨 대조해볼 일이다.
때마침 내리는 물로 개울은 힘차게 흐르고 비에 젖은 잉어는 잠수함처럼 거대한 몸집을 수면으로 떠올린다. 성인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마을의 원로가 젊은이들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훈시를 하는 중이다.
연꽃과 구름과 천년의 밀어
명선사 앞에는 벼들이 자라고-
착함을 밝히는 명선사의 종루 -
방금 비는 잠시 그치고 둠벙에 이슬이 떨어졌다.
민박도 겸하는 메밀국수집 산본옥
여기서는 허수아비가 V자를 그리고 모녀는 다소곳하다.
구름이 산을 그리는 커피숍의 禪客들-
이런 민박에서 하루 쉬었어야 하는데...
한 뙈기의 논과 파밭 그리고 부처의 연꽃...그 뿌리도 우리는 조상의 차례상에 올렸었다.
이제 가나자와로 떠날 시간! 정류장에서...
太古의 地上樂園 : 장천의 구름다리에 사람들이 오선지의 악보처럼 매달려 출렁거린다. 입구에 사람 사는 마을의 도리가 大門으로 서있고 秋葉神社가 뒤를 받치고 있다. 논을 지나 정면에 바라보이는 고풍의 明善寺가 인상에 남는다.
구름은 갈대지붕위에 또 다른 부드러운 흰 산을 만들고 땅에는 자라는 벼들로 녹색 바다를 그린 마을은 평화로웠다. 이 작은 마을에 온천을 겸한 여관이 둘과 태고의 화전민의 주택인 민박들이 21곳 그리고 토산품과 식사와 기념품 가게들이 59곳에 안내소 2군데에 미술관과 문화관들이 있으니 이곳에 하루 머물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봄의 꽃 여름의 구름과 가을의 단풍보다는 백설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등불이 환한 겨울의 풍경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커피숍에는 참새처럼 창가에 앉아 구름이 집을 그려내는 모습에 손님들은 커피가 식는 줄을 모르고 있다. 논가의 허수아비 앞에서 V자를 그리는 아이들 사진을 찍는 부모들도 우리나 그들이나 다를 것이 없다. 명선사와 현중문을 지나 山本屋에서 메밀국수를 먹었는데 이 집은 민박도 겸하고 있다. 뜰에도 백일홍과 해바라기가 피어 있었다.
어느덧 1시를 넘겼다. 비는 그치지 않는다. 주차장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차장은 일일이 예약티켓을 확인하고 좌석으로 안내한다.
버스는 이제 화전민의 구름마을을 뒤로 하고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높인다. 터널의 연속과 산간의 푸르름! 비스듬히 자동차는 바다를 향해 해발고도를 낮춰간다. 오후 3시쯤 버스는 닷새 만에 우리를 가나자와 터미널에 되돌려 세웠다. 도야마 현의 다떼야마, 나가노현의 마쯔모또, 기후현의 다까야먀를 거쳐 다시 이시가와현으로 돌아온 것이다.
<계속 다음은 最終回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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