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알프스의 추억[7] 제5일-8월12일[木]
다까야마에 내리는 비
다까야마의 옛거리에 비가 내린다...사람들은 리틀교또라고들 부른다는데...
내설악을 닮은 길 : 푹 자고 아침 6시 모닝콜로 깨어났다. 하기야 어제는 北알프스에서부터 여섯 번 차를 바꿔 타고 이곳에 와서 또 松本城을 보고 산책까지 했으니...모두들 이곳은 알프스에 가기 위해 지나가는 곳이라고 하지만 이곳도 北알프스의 기슭이고 온천과 고원 등등 볼거리도 많다. 시립박물관, 窪田空穗[작가요 국문학자인]의 기념관, 시계박물관, 일본 최초의 초등학교 건물, 무엇보다 浮世繪박물관을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다. 이 그림이야말로 역사적 외면이 아닌 일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精華이기 때문이다.
비에 젖은 옷들도 대강 말랐는데 이번 걸음에 비와 햇빛이 반복되는 나날을 겪고 있는데 그렇다면 오늘은 비가 올 차례다.
이 호텔에 머무는 사람은 일찍 자고 일찍 떠난다.
6시30분에 벌써 로비에 음료와 빵이 준비되어 있다. 완전히 유럽식이다. 우유- 빵- 커피 이런 식으로 아침을 먹고 어떤 손님은 아침을 주섬주섬 꾸려가기도 한다.
7시 정각 프런트에서 택시를 불렀다. 그렇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정류장까지는 10분도 안 걸린다. 예약이 필요 없다는 매표구에서 당일 표를 사는 것인데 다행히 붐비지 않는다.
이 노선은 7:45 / 11:10 / 13:50 / 17:10에 158번 도로를 따라 네 번 떠나고 100Km인데 2시간20분이 걸린다. 돌아오는 버스도 비슷하다.
다정해 보이는 프랑스 중년 여인 두 사람 - 스페인 한 쌍 그리고 단정한 일본 사람들 몇 명이 손님의 전부다. 날은 흐리고 선선하다. 7시45분 떠난 버스는 순식간에 시가지를 벗어나고 벼가 파랗게 자란 들길을 달리다가 버스는 비에 젖기 시작하는 산길로 접어든다. 이 158번 도로를 지도에서 찾았을 때 아! 松本[마쯔모또]에서 古山[다까야마]로 갈 수 있구나! 이렇게 안심을 하고 코스를 결정했던 것인데 아무래도 이 산을 넘어 바닷가 카가[加賀]로 직행하는 노선은 없는 것 같다.
이 길이 내설악을 닮았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오히려 협곡에 가깝다. 버스는 깎아지른 산봉우리와 미끄러운 빗길을 골짜기를 안고 돌며 끊임없이 터널을 지나간다. 협곡을 막아 곳곳에 댐을 만들었는데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이 있다. 안개 속에서 비에 젖는 나뭇잎의 이끼 냄새가 차창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산사태가 일어난 곳에는 뿌리를 드러낸 쓰러진 고목이 드러눕고 유황으로 벌겋게 변한 바위를 씻으며 골짜기의 녹색 물은 흐른다. 한숨 자면서 지난 피로를 씻으려는데 좀처럼 눈을 떼게 하지 못한다. 바퀴 밑으로 1500m 지붕위에 또 1500m를 얹고 차는 달린다. 기다알프스의 본명은 히다산맥[飛驒山脈]인데 100Km이상 길게 남북으로 늘어서있는데 이곳은 그 남쪽이다. 우리는 ‘ㄷ’자로 다시 이 산맥을 지나 제 자리로 돌아가는 셈이다.
9시15분 버스는 빗줄기가 거세진 平湯溫泉에 잠시 서는데 주차장은 빼곡 차들로 넘쳐 나고 갑자기 산간에 시장이 선 듯 복작거린다. 안내책자를 보니 여기서 도야마로 바로 갈수도 있는데 이 부근에 잇달아 온천장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또 3190m의 奧穗高岳을 비롯하여 3000m급의 산들이 줄을 이었다. 이 山을 바라보려고 해발1000m의 주차장에서 2156m의 西穗高입구까지 10분에 1000m를 상승하는 2단계 로프웨이가 설치되어 있다. 120인승인 이 로프웨이의 왕복요금은 물경 2800円이니 KTX로 부산까지 갈수 있는 돈이다.
그러는 잠시 버스는 다시 빗길을 가르고 터널을 지나고 산기슭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한다. 협곡을 벗어나며 마을이 나타나고 빗줄기는 가늘어진다.
내설악을 닮은 158번도로 - 호수는 손에 잡힐듯...
차창엔 푸른잎의 향기가 스밀듯한데 계곳의 돌은 유황에 물들고
산사태가 난 비탈엔 고목이 쓰러져..
터널을 빠져나온 차들은 비탈에 매달려 있고..
빈 방 없습니다 : 10시5분 버스는 시내에 들어서 다리를 건너며 아침시장을 흘낏 보이고 정류장에 멈춘다. 버스정류장은 기차역 바로 옆에 관광안내소와 함께 있다. 이 광장은 때 아닌 盛市를 이루어 외국인 일본인 여행객들로 ‘페르시안 시장’을 연상시킨다. 걸어서 15분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강원도 횡성만한 이 산간 마을에 웬 사람들인가? 일행을 역대합실에 잠시 쉬게 하고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얻고 잘 곳을 묻는다. 여기서 이틀을 잘 예정이니 좀 편한 호텔을 잡고 싶다. ‘飛驒高山宿泊가이드’라는 팜프렛을 얻고 보니 숨이 좀 놓인다. 국제관광호텔, 비지네스호텔, 관광여관, 일본여관, 민숙, 펜션으로 나뉜 잘 곳은 모두 80곳 쯤 된다. ‘インタ-ナシヨナル旅籠驛車イン’이라는 이름은 역마차를 연상시키는데 값도 情緖도 모두 알맞은데 당연히(?) 빈방이 없다. 길 건너 松山호텔은 값도 싸고[1인당 3500円] 방도 매우 넓어 보인다. 단걸음에 달려가 보았더니 오늘은 방이 없다.
다시 관광 안내소에 오니 여관협동조합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안내소를 알려준다. 이런 안내소도 民宿[일본의 민박]과 히다[飛驒]지역안내소 등 모두 세 곳이 있다. 걸어서 5분이라니 짐도 무겁지 않고 함께 거리구경 겸 신호등 두 개 건너 ‘종합숙박예약센타’를 찾았는데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이미 더 팔 房이 없어 한가한 가게는 참 이상해보였다. 한참 인터넷을 검색하고 직원은 워싱턴 호텔의 방을 잡아주었는데 다시 驛광장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175개의 방이 있는 이 호텔은 1박에 10500円, 그래도 손바닥만 한 茶卓이 의자 두 개와 함께 놓여있고 창이 훤하게 트인 넓은(?) 편이었다. 체크인이 오후3시, 퇴실이 오전10시니까 잠시 짐을 맡겨놓고 역광장으로 나오니 이미 정오! 점심시간이다.
역 광장에는 벤치가 있고 이 마을의 꽃[市花]인 百日紅[사찰에 많이 심어진 나무에서 피는 붉은 꽃이니 市木이라고해야 하나?]이 붉게 피었고 한얀 水菊이 탐스럽게 피었다. 나는 그저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세 사람은 우동을 먹으러 보냈다. 가랑비는 오락가락하는데 오랜만에 잠시 혼자 있고 싶었다.
홈통에서 쏟아지는 빗물은 미야가와에 작은 폭포를 만들어...
조선의 막사발이 이 산골에 전시되어 있는데..
혼례복장
베틀
히다의 옛 그릇들...
한반도에서 건너간 기술로 빚은 도자기[수혜기]가 이 산골에도...
낙랑군출토품
비가 잠시 갠 성아래거리의 관광객들...
양조회사의 입구에는 삼나무가지로 만든 酒林이라는 솔방울모양의 복을 비는 상징물이 걸려있고...
술통앞에 모인 아이들은 포즈를 취하고...
비갠 붉은다리 - 中橋에는 한가한 행인들
전형적 목조의 일본식 집들은 낡아가지만...
화단에 손톱으로 꽃을 가꾸는 할머니의 손길로 집은 수명을 연장하고...
빗길에 네온은 어려...
저녁밥상
돌아오는 길 - 오카리노를 만드는 장인의 가게...
비내리는 옛거리 : 이름 그대로 일본 알프스 최고봉인 3190m의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를 鎭山으로 하는 산악마을의 古城은 카나자와와 마찬가지로 허물어졌다. 城이 있으면 물이 흐르는 것이 일본의 정석이니 당연히 냇물[宮川]이 흐르고 봄이면 벚꽃이 피는 中橋[나카바시]를 비롯해서 얼핏 지도에 11개의 다리가 보인다. 이 다리 좌우에 예나 지금이나 삶의 터전이 있다. 이 길에도 마을의 안내 지도가 걸려 있고 단아한 3층집과 앵글과 통유리를 이용한 현대식 건물 그리고 인도의 파수각을 닮은 히다고깃집- 이 동네 고기는 횡성한우처럼 모조리 히다소고기[飛驒牛]다. 두부를 갈아 파는 가게와 스시[壽司]집이 이어진다. 버들다리[柳橋]를 지나며 거세진 비는 지붕을 타고 홈통에서 작은 폭포를 이루며 미야가와[宮川]로 쏟아진다. 筏橋[뗏목다리라고 할지? 이런 지명이 전라도에 있다] 뒤로 난간에 붉은 색을 칠한 中橋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자 전통거리가 이어진다. 된장과 술 과자 장신구 등을 파는 가게가 이어진다. 이곳의 토속주인 舩坂酒造에서는 深山菊[골짜기의 국화] 등등 온갖 종류의 술을 전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 술통 앞에서 사진을 찍고 또 한 잔 기울이기도 한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메운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이다.
飛驒民族考古館 : 히다민족고관은 고가를 이용해 진열품을 전시하고 있다. 거실에는 화덕이 있고 부엌에는 우물이 있고 방을 따라 베틀을 비롯해서 의식주와 의료기구 등등 민속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후원의 고고관이 눈길을 끈다. 몇 점 안되지만 중국의 秦漢時代의 유물과 樂浪의 鴨形土器(오리를 닮은-) 그리고 수혜기를 비롯해 조선의 사발도 보인다.
수혜기(須惠器)란 5세기에 한반도에서 일본에 건너온 물레와 가마를 사용해서 높은 온도로 구워낸 회흑색 토기인데 매우 강한 硬質의 土器다. 초기에는 당연히 한국 삼국시대 硬質土器의 모습을 닮았으나 7세기 이후에는 금속기를 연상케 하는 예리한 형태로 서서히 변화되었다고 한다. 그 토기는 일본의 腹部에 해당하는 나라[奈良]지방에 있을 법한데 등골 쪽에 해당하는 이 산골에서도 발굴되었다니 내게는 신기했다.
이 마을은 東京과 같은 2177.67㎢의 면적에 東西81㎞, 南北55㎞로 표고차는 2700m에 이르고 면적의 92%가 삼림인 산골마을로 근래까지 교통도 원활하지 못한 奧地인데 그런 문화의 혜택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考古館을 나서니 비는 뜸하다. 붉은다리[中橋를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를 지나며 목욕탕을 찾아본다. 알몸으로 그 나라 사람과 목욕을 하다보면 뭔가 그 나라를 피부로 느낄 것 같은 기분이다. 京都의 流頭節에 창포다발을 띄운 동네목욕탕에 들렀다가 그런 느낌이 있었으니까...이 동네에는 목욕탕지도도 따로 있는데 8군데가 표시되어있고 대강 오후3시에 문을 열고 9시경에 닫는다. 거의 24시간 여는 우리 찜질방과는 다른데 다리 옆의 中橋湯을 확인만 하고 돌아섰다. 좀 어지럽다. 수퍼마켓의 의자에 앉아 맥주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가 비에 젖은 몸을 좀 말리기로 했다.
짐을 찾아 방을 정리하고 쉬다가 저녁산책 겸 저녁을 먹기로 한다. 어제부터 李선생이 이 여행을 리드하기로 바톤터치를 했으니 이제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니 한시름 놓았다. 물기를 머금은 步道를 따라 네온이 반사하고 고기 굽는 냄새는 녹색의 나뭇잎을 지나온 습기를 머금은 바람을 따라 골목을 따라오고 있었다.
8월11자 讀賣新聞 : 방에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8월11자 신문을 뒤적였다. 읽을 줄은 모르나 몇 자의 漢字를 훑어본다. 1면의 머리에 ‘日韓倂合痛切な反省 締結100年首相談話’, 2면에 談話全文과 ‘韓國關係に發展期待’, 3면에 ‘未來指向の兩國關係に彈みな’라는 사설과 담화작성에 首相과 仙谷官方長官, 福山哲郞 古川元久 두 官方副長官이 주관했다는 기사와 문화재반환에 있어 ‘讓渡’라는 용어의 문제 등등, 5면에 韓國의 評價二分 및 아시아의 평가 등에 대해 도배를 하고 있었다. 일본 땅에서 일본인들의 과거사 반성에 대해서... 지금 한국에서는 어떤 연설문이 준비되고 있을까? 돌이켜보면 일부의 사람들이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해 또 일부의 의견인지 대다수의 의견인지 아리송한 이른바 輿論이라는 것을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계속 ⑧ 다까야마의 아침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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