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발견[1]...기다알프스의 상상
스펜서트레이시의 ‘山’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배우는 노인과 바다에서도 그렇듯이 오직 한 사람의 연기만으로 한 성격을 만들어 내고 관객을 한 시간 반씩 붙들어둔다.
그 山도 오직 하양 - 눈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런 단순한 산과 인격이 왜 아름다워 보일까? 나는 그런 산에 오르는 것이 두렵다. 딱 한번 달리는 기차에서 장엄한 융푸라우를 우러러보았다. ‘풋풋한 여인’이 그 이름일까? 일본 사람들은 그 산을 가져다 우리 설악산과 마주 보이는 3015m의 산에 北알프스란 이름을 붙였고 이노우에 야수시[井上 靖]는 이 산을 찾아가는 도꾜 젊은이를 소설로 썼다.
그 산은 어떤 모습일까? 무더운 여름날 그냥 버스나 등산열차 그리고 로프웨이로 앉아만 있으면 된다니까 가보려고 한다.
일주일을 밤낮없이 인터넷을 뒤졌다. 컴맹에 더하기 영어와 일어의 문맹이 얼마나 불편한 것인지 새삼 느낀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글쎄? 우리가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부자유한가를 체감하는 행사라고나 할까? 자연 속에서 이 사회의 굴레를 벗고 자유롭게 살아보는 일주일! 그 일주일을 위해 돈을 모으고 스케쥴을 짜고 여관을 찾고...무엇이라도 하나 더 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일주일을 분초로 쪼개는 이 일이 과연 자유로운가? 더 정밀한 감옥을 만드는 일은 아닌가?
남의 여행기를 열심히 읽어 보고 그 그림자에 내 신발을 신겨서 넋을 놓고 따라가 본다. 그렇게 수없는 복사와 짜깁기를 거쳐 통장이 뭉텅 잘려나가게 큰돈으로 비행기표를 산다.
‘비행기를 한 대 사는 것보다는 싸잖아?’
이런 실없는 위로를 안주삼아...
인터넷을 뒤져보면 어느 여행사건 4개월이 남고 300석이나 되는 자리가 ‘잔여석 09’이렇게 알맞게 사람의 가슴을 옥죈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빚을 내서 그 자리를 비집고 전자메일로 들어온 티켓을 인쇄까지 해둔다.
대마도가 길쭉한 두 개의 고구마로 이어진 섬으로 생각했던 상상은 여기서 무너진다.
그리고 이 굽이굽이에 만년의 세월을 이어 사람이 살고 있고.... 또 바다 건너 그
惡名(악명) 높은 카리브의 해적보다 잔인했던 왜구의 소굴이었다는 것도...
아무튼 고마쓰-가나자와-북알프스-마쯔모또-다까야마-시라가와꼬-그리고 비행장 옆 해수욕장 ... 이 코스를 내설악과 외설악을 도는 코스라고 집사람에게 브리핑한다.
‘미소시루가 옛날 맛이 아니던데?!’
이 말에 ‘딸아이와 함께하는 일본여행’이라는 깔끔한 글을 인터넷에서 읽은 터라 이러저런한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막걸리에 된장에 고추장까지 모두 공장에서 생산되는 한국의 입맛이 반갑지 않은 획일화가 아니냐는 반문도 함께...
사실 이 획일화는 심각하다. 월남 대바구니를 담양에서 사고, 제주도의 하르방을 설악산에서 만지고 전주비빔밥을 부산에서 먹는 여행은 좀 이상하다. 옛날 시골에는 장독대가 있었다. 집집마다 된장 고추장 간장 맛이 달랐다. 그 가운데 술독도 있었는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술맛이 달랐다. 하느님의 창조가 위대하다는 것은 이 세상에 똑 같은 사람이 한 쌍도 없이 태어나게 했다는 것. 그럼! 쌍둥이는?? 그건 그조차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샘플이지! 하나의 태양조차 일출과 일몰이 같지 않다는 것! 하나의 공간도 시간도 반복이 없으면서 공존하게 하는 것! 그러면 지루한 일상은 누가 만든 것인가? 인간에게 어리석음을 주어 이 조화를 깨뜨리지 못하게 스스로의 감옥을 만드는 函數(함수)를 예비하신 것이지!
똑 같지 않다는 것! 그것을 찾으러 여행을 나선다. 같은 것도 자리를 바꾸면 같지 않다는 것 때문에 집을 나선다.
어떤 소녀의 여행기에 ‘사진발에 속아서’라는 한마디를 보고 나는 ‘푸풋-’하고 공감의 웃음을 터뜨린다. 현장에서 프레임을 통해 감동을 찍는 것과 사진을 통해 현장을 상상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더구나 사진을 통해 상상한 현장을 그 자리에서 확인했을 때의 乖離(괴리)란?
일본 사람들의 아기자기함! 특히 온천장과 정원과 또 집안의 장식들...그래서 독일 카메라가 일본에서 부활한 것일까? 가끔 카메라는 내 마음의 비밀을 드러내 보인다. 그럴 때도 당연히 웃음이 나온다. 맞선보고 보여주는 처녀총각들의 밤잠 설치는 상상의 설레임 같은...
그러나 이런 상상은 특히 온천장에서 몸을 반쯤 담그고 아련히 수증기가 따뜻한 환상을 만들어줄 때 실망을 채우고도 남을 아름다움이 있다. 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흔들리는 단풍잎! 끊어질듯 이어지는 교향곡처럼 환영과 현실은 상상을 매개로 끝없이 전개된다. 메마름에서 촉촉함으로...이번 여름에는 이 빈곳을 어떤 이야기로 채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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